제60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밀양>
감독 : 이창동
주연 : 전도연, 송강호
주요 줄거리
영화 '밀양'은 아들을 잃은 한 여인의 감정적 붕괴와 신앙을 통한 구원, 그리고 그 구원의 아이러니를 집요하게 그려낸 이창동 감독의 대표작이다. 서울에서 남편을 잃고 어린 아들 준과 함께 밀양이라는 소도시로 이사 온 신애(전도연)는 남편의 고향이자 자신에게는 낯선 이 도시 밀양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한다. 미용실을 운영하며 평범한 일상을 구축하려 노력하는 그녀는 현지 카센터를 운영하는 장 사장(송강호)과 친해지며 삶의 작은 희망을 발견한다.
그러나 행복한 일상은 오래가지 않는다. 어느 날 신애의 아들이 유괴되어 사라지고, 끝내 시체로 발견된다. 평범한 엄마로서,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신애는 세상의 모든 의미가 무너지는 체험을 한다. 범인은 놀랍게도 가까운 이웃이었고, 그 잔혹한 진실 앞에서 신애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절망의 끝에서 그녀는 교회를 찾는다. 극도의 고통 속에서 찾은 신앙은 신애에게 유일한 버팀목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앙 속에서 희미하게 피어나는 평온도 오래가지 않는다. 그녀는 결국 가해자가 복역 중인 교도소를 방문하고, 그가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며 신의 용서를 받았다고 말하는 순간, 신애의 믿음은 다시 산산이 부서진다. 그녀가 의지했던 신앙마저 자신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사실, 아니 오히려 가해자를 먼저 구원했다는 현실 앞에서 신애는 또 한 번 무너진다.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
신애는 영화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처음에는 강인하고 독립적인 여성처럼 보이지만, 아들을 잃고 나서부터 서서히 감정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가 겪는 슬픔은 단순한 상실을 넘어, 세상과의 단절, 인간 존재에 대한 회의로 확장된다. 신애의 감정선은 영화 전체의 톤을 이끌며 관객을 그녀의 내면 깊은 곳까지 끌고 간다.
장 사장은 그녀를 조용히 지켜보며 곁을 지키는 인물이다. 그는 신애를 사랑하지만, 결코 강요하지 않으며, 그녀의 삶을 조용히 감싸려 한다. 그의 존재는 유일한 인간적 위안처럼 보이지만, 신애는 끝내 그조차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는 신애가 겪는 고통이 단순히 개인적 슬픔이 아니라, 세상과 인간 전체에 대한 믿음의 붕괴임을 상징한다.
또한, 범인은 의외로 평범한 이웃이었으며, 그는 감옥 안에서 신앙을 통해 스스로의 죗값을 치렀다고 여긴다. 그는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구원받은 자’로서의 태도는 오히려 신애에게 더 큰 절망을 안긴다. “신이 나보다 그를 먼저 용서했다고?”라는 감정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질문이며, 인간이 찾는 신의 정의가 과연 존재하는지를 되묻는다.
결론
신애는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다. 그녀는 외면적으로 교회에 다니고, 기도하며, 신을 찾는 듯 보이지만, 그 마음속은 온통 분노와 허무로 가득 차 있다. 그녀가 결국 저지르는 마지막 선택, 스스로를 해치려는 충동과 무기력한 방황은 구원이라는 이름이 실은 얼마나 인간적으로 불완전한지를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 신애는 장 사장이 깎아준 잔디밭 위에 앉아 머리를 잘라달라고 한다. 고요하고 따스한 햇빛 속에서 흐르는 눈물, 그것은 어쩌면 비로소 현실을 받아들이려는 한 인간의 작은 움직임일지도 모른다. 이 장면은 참혹한 감정의 소용돌이 끝에 도달한 고요한 절망, 혹은 평온을 상징하며 관객에게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추천 이유
<밀양>은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고통을 파고드는 드문 영화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 용서할 수 없는 이에게 신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감정, 그리고 그 안에서 다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숙명. 이 영화는 거대한 서사 없이도 단 한 사람의 감정만으로도 얼마나 강력한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전도연의 연기는 ‘전율’이라는 말로도 모자란다. 그녀는 아들을 잃은 엄마의 절망, 신을 향한 기도, 그리고 배신당한 듯한 감정을 극도로 세밀하게 표현한다.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은 이 연기의 진가를 세계에 알렸고, 한국 배우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린 사건이기도 했다.
이창동 감독은 감정의 극단을 다루면서도 절제된 연출을 유지한다. 신파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냉정한 거리감을 통해 관객에게 더 깊은 몰입을 유도한다. 그는 신과 인간, 죄와 용서, 믿음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날카롭게 파고들며, 관객에게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결국 <밀양>은 용서에 관한 이야기이자, 구원받지 못한 이들을 위한 영화다. 삶은 결코 명확하지 않으며, 때로는 어떤 해답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그런 불완전함 속에서도 인간은 살아가야 한다. 이 영화는 바로 그 모순과 숙명을 정면으로 응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