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 공식 초청작
<왕의 남자>
감독 : 이준익
주연 : 감우성, 이준기, 정진영, 유해진
주요 줄거리
조선시대 연산군 치하 당시에는 줄타기와 익살극 등이 성행했다. 서민층 광대 장생(감우성)과 공길(이준기)이는 함께 전국을 떠도는 남사당패 일원으로 희극을 선보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재능으로 더 많은 관객을 모으기 위해 한양으로 향했다. 한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왕 연산군(정진영)을 조롱하는 패러디 공연을 벌이고, 그것이 문제가 되어 결국 체포된다.
하지만 이들의 재치와 기지가 눈에 띈 연산군은 이들을 죽이지 않고 궁으로 들인다. 연산군 앞에서 벌인 패러디 공연은 오히려 그의 흥미를 자극했고, 두 광대는 왕의 전속 광대로 채용된다. 궁중 생활을 하면서 장생과 공길의 관계에는 미묘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여장도 불사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의 공길은 연산군의 특별한 관심을 받게 되고, 연산군은 점차 공길에게 집착하게 된다. 반면 장생은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민중의 삶을 예술로 풀어내는 광대의 본질을 지키려 애쓴다. 이들의 갈등은 점점 깊어지고, 연산군의 폭정은 극에 달해 궁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는다. 결국 장생은 광대의 신념과 자유를 위해 위험한 결단을 내린다.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
장생과 공길 : 단순한 연기 파트너 이상의 관계로 보이는 두 사람은 영화의 핵심축이다. 장생은 거칠지만 현실에 뿌리내린 인물이며, 공길은 여성적인 외모와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로, 예술적 감수성과 내면 갈등이 강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깊이 신뢰하지만, 공길이 왕의 총애를 받으며 점점 거리를 두게 되자 장생은 괴로움과 질투를 느낀다. 이는 단순한 우정이나 경쟁 이상의 감정적 복합성을 암시한다.
공길과 연산군 : 연산군은 공길에게 점점 빠져들며, 그를 소유하려는 집착을 드러낸다. 공길은 연산군의 관심을 두려워하면서도 거부하지 못하고, 그 과정에서 죄책감과 혼란을 겪는다. 이 관계는 성적 긴장뿐 아니라 권력과 예술 사이의 억압과 유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장생과 연산군 : 장생은 연산군의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진실을 풍자하는 예술정신을 유지하려 애쓴다. 그는 왕의 변덕에도 굴하지 않으며, 결국은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광대의 사명을 선택한다.
연산군과 조정 신하들 : 연산군은 폐모살해라는 과거의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있으며, 점점 폭군으로 변해간다. 신하들과의 갈등은 계속되고, 왕의 폭정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결론
공길은 연산군의 총애 속에서 정체성을 잃어가고, 장생은 그런 공길을 구하려 하지만, 이미 늦은 감이 있다고 느낀다. 장생은 마지막 공연에서 조선의 정치와 왕의 폭정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이는 연산군을 격분하게 만들고, 결국 장생은 체포된다.
그러나 장생은 처형당하기 직전까지도 광대의 자존심을 꺾지 않는다. 마지막에 장생과 공길은 다시 무대 위에서 만나 줄타기를 한다. 현실인지 환상인지 모를 그 장면에서 두 사람은 함께 공중을 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영화는 끝난다. 이는 죽음 이후에도 예술적 자유와 우정을 지키고 싶다는 은유적인 결말이다.
추천 이유
영화'왕의 남자'는 상업성과 예술성을 모두 충족시킨 한국 영화의 대표작이다. 권력과 예술, 사랑과 자유, 남성성의 경계 등 다양한 주제를 뛰어난 서사로 엮어낸 이 작품은 관객 1,200만 명 이상의 흥행을 기록하며 한국 영화사의 한 획을 그었다.
배우 이준기와 감우성의 깊이 있는 연기, 특히 공길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그려낸 제3의 성적 정체성과 아름다움은 당시 사회적 통념을 뛰어넘는 시도로 주목받았다. 연산군의 폭정과 그 안에서 피어난 예술의 빛은 현대사회에 대한 은유로도 읽히며, 여전히 시사점을 갖는다.
또한 풍자극을 예술의 최전선으로 끌어올려 권력 비판이라는 기능을 복원한 점은 광대라는 존재에 새로운 존엄성을 부여한다. 마지막 장면의 시적인 아름다움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베를린영화제 초청을 통해 해외에서도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며, 한국 전통 공연예술의 미학적 재현 또한 영화의 미덕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