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
<올드보이>
감독 : 박찬욱
주연 : 최민식, 유지태, 강혜정
주요 줄거리
박찬욱 감독의 2003년작 <올드보이>는 한 남자가 15년간 이유도 모른 채 감금되었다가 풀려난 뒤, 그에게 이를 가한 인물과 그 동기를 파헤쳐 나가는 강렬한 복수극이자, 인간 존재와 죄의식, 운명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평범한 가장 오대수(최민식)는 어느 날 갑자기 납치되어 창문 하나 없는 방에 갇힌다. 이유도 알 수 없는 감금은 15년간 계속되고, 그는 매일 방송되는 뉴스를 통해 세상의 변화를 접하고, 아내의 살해범으로 자신이 지목되었다는 소식까지 접한다.
15년 만에 풀려난 그는 한 손에 핸드폰과 돈이 든 가방 하나를 들고 세상으로 던져진다. 이후 그는 자신에게 감금을 지시한 인물 이우진(유지태)의 존재를 추적하며, 도중에 만난 미도(강혜정)와 관계를 맺는다. 미도는 오대수의 이야기를 믿고 그를 돕기 시작하지만, 둘 사이엔 생각지도 못한 비극이 숨어 있다.
이우진은 오대수에게 15년간의 감금보다 더 가혹한 진실을 안겨준다. 과거 고등학교 시절, 오대수가 무심코 퍼뜨린 소문 하나가 이우진의 여동생의 자살로 이어졌고, 그 일은 이우진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그는 오대수에게 자식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절대적인지를 증명하기 위해, 오대수의 딸을 미도라는 이름으로 키운 후, 아버지와 딸이 서로를 모른 채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충격적인 복수를 계획한다. 결국 모든 진실이 드러난 후, 오대수는 혀를 자르고 개처럼 기어 다니며 이우진에게 용서를 구한다. 그를 끝내 불쌍히 여긴 이우진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
오대수는 영화의 중심 인물로, 그의 행위는 모두 과거의 무심한 언행에서 비롯된다. 평범한 인물이지만, 젊은 시절의 작은 실수가 끔찍한 결과를 낳고, 이는 극단적인 복수로 되돌아온다. 그는 누군가의 인생을 파괴한 죄인이자, 동시에 아무 죄 없이 고통을 겪는 희생자이기도 하다. 이중적인 존재로서 관객의 동정과 반감을 동시에 자아낸다.
이우진은 표면적으로는 매끄럽고 절제된 인물처럼 보이지만, 내면엔 동생의 죽음을 복수하려는 집요함과 광기가 자리 잡고 있다. 그는 감정의 고통을 냉정한 계획으로 응축시켜 오대수의 삶을 서서히 파괴한다. 복수의 방식은 신체적 고문이 아니라 심리적 고통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미도는 표면적으로는 낯선 남자 오대수를 돕는 따뜻한 존재처럼 보이지만, 그녀 역시 이 복수극의 희생양이다. 자신의 정체를 모른 채 아버지와 연인이 되는 운명을 부여받았고, 그녀의 존재 자체가 복수의 무대이자 결말을 이끄는 비극의 핵심이 된다.
결론
모든 비밀이 밝혀진 후, 오대수는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완전히 버리고 개처럼 행동함으로써 이우진의 용서를 구한다. 이 장면은 박찬욱 감독이 반복해서 다루는 ‘굴욕과 존엄의 경계’가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우진은 복수의 목적을 이루고 나서, 아무런 말 없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살함으로써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이후, 오대수는 최면을 통해 미도와의 관계에 대한 기억을 지우려 하고, 영화는 그와 미도가 눈 덮인 산속에서 마주한 채 얼어붙은 웃음을 짓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 결말은 해석을 여전히 열어둔 채, 과연 기억이 사라진다고 해서 죄가 사라지는 것인지, 망각이 진정한 구원일 수 있는지를 관객에게 되묻는다.
추천 이유
<올드보이>는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다. 이 영화는 ‘복수의 이유’와 ‘복수 이후의 인간’을 깊이 파고든다. 한 인간의 행위가 또 다른 인간의 삶을 어떻게 송두리째 바꾸는지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도덕적 질문을 던진다. 관객은 오대수의 고통에 감정이입하면서도, 그가 자초한 과거의 죄를 마주하며 혼란에 빠진다.
형식적으로도 영화는 완성도가 매우 높다. 원 테이크로 촬영된 ‘망치 복수 신’은 영화사에 남을 명장면으로, 폭력을 연출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함과 감정의 밀도를 동시에 살린 대표적인 예다. 박찬욱 감독의 미장센과 서스펜스 연출, 조영욱 음악감독의 불협화음적이면서도 감정을 조율하는 사운드트랙은 영화의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최민식은 이 작품을 통해 배우 인생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으며, 유지태는 냉철하고 절제된 연기로 인간 내면의 광기를 섬세하게 표현해 냈다.. 강혜정 역시 복잡한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소화하며 존재감을 증명했다.
<올드보이>는 단지 한국 영화의 걸작이 아니라, 세계 영화계가 한국 영화의 저력을 인식하는 계기를 만든 작품 중 하나다. 제57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찬사를 받은 것은 이 영화가 가진 독창성과 강력한 정서적 임팩트를 증명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회자되는 이유는, 단순한 충격을 넘어선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와 형식미의 정수에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