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그 복잡하고 모순적인 감정들에 대한, 통렬하면서도 따뜻한 해부학
(2021년 개봉)
<장르만 로맨스>
감독 : 조은지
배우 : 류승룡, 오나라, 김희원, 이유영, 성유빈, 무진성
1. 주요 줄거리
영화 '장르만 로맨스'는 한때 잘 나갔던 베스트셀러 작가였지만 7년째 슬럼프에 빠져있는 중년의 작가 김현(류승룡)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현은 이혼한 전처 미애(오나라),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 성경(성유빈)과 함께 살고 있으며, 출판사로부터 다음 작품에 대한 압박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 그의 삶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창작의 고통과 가족 문제, 그리고 과거의 그림자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그런 현의 앞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젊은 작가 유진(무진성)이 나타나 현의 다음 작품을 함께 쓰자고 제안하며 미묘한 관계를 형성합니다. 유진은 현의 작품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지만, 동시에 현이 가진 불안감과 질투를 자극하기도 한다.
한편, 현의 전처 미애는 현의 절친한 친구이자 출판사 대표인 순모(김희원)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려 하고, 현은 그들의 관계를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 또한, 현의 오랜 지인이자 에디터인 혜진(이유영)은 현의 곁에서 그를 지지하고 조언하지만, 그녀 또한 현을 향한 오랜 감정을 숨기고 있다. 이처럼 영화는 현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과 관계, 그리고 삶의 아이러니를 마주하는 과정을 유머러스하면서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현의 작품이 어떻게 완성되어 갈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가 어떤 성장통을 겪을지는 영화의 핵심 서사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사랑과 관계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들을 던지게 된다. 현이 겪는 창작의 고통은 비단 작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모든 종류의 어려움과 좌절을 대변하기도 한다.
2.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
영화 '장르만 로맨스'는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인물들 간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관계망을 통해 삶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중심 인물인 김현(류승룡)은 이혼한 전처 미애(오나라)와 여전히 친구처럼 지내며, 아들 성경(성유빈)의 공동 양육자로서 함께 살고 있다. 이들의 관계는 이혼했지만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가족의 형태를 보여주며, 익숙함 속에서 서로에게 의지하고 때로는 상처를 주는 현실적인 모습을 그렸다. 현과 미애는 이미 남남이지만, 서로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며 미련과 정을 동시에 느끼는 듯하다. 특히, 현의 절친한 친구인 순모(김희원)가 미애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려 하면서 현의 내면은 더욱 복잡해졌다. 순모는 현의 오랜 친구이자 사업 파트너로서 현의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미애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 없어 현과의 우정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 삼각관계는 전형적인 로맨스 클리셰를 비틀며, 어른들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이기심이 얽힌 미묘한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한편, 현의 소설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며 그의 삶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유진(무진성)은 현에게 창작의 영감을 주지만, 동시에 그의 아슬아슬한 자존감을 위협하기도 한다. 현과 유진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 혹은 동료 작가를 넘어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독특한 형태의 유대감을 형성한다. 마지막으로, 현의 오랜 지인이자 출판사 에디터인 혜진(이유영)은 현의 곁에서 묵묵히 그를 돕고 응원하며, 현을 향한 오랜 짝사랑을 간직하고 있다. 혜진의 존재는 현이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고,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이처럼 각 인물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사랑, 우정, 가족애, 그리고 예술적 영감까지 다양한 형태로 엮여 하나의 유기적인 관계망이 형성되어 있다.. 영화는 이들의 관계를 통해 사랑이 단순히 남녀 간의 감정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3. 결말
영화 '장르만 로맨스'의 결말은 주인공 김현(류승룡)이 마침내 자신의 소설을 완성하고, 삶의 여러 관계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보여준다. 7년 동안 겪었던 슬럼프를 극복하고, 유진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작품을 완성한 현은 작가로서 다시금 일어서는 데 성공한다. 그의 소설은 비록 현이 처음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그 과정에서 현은 자신과 주변 인물들의 복잡한 감정들을 직면하게 되었다. 결말 부분에서 현은 전처 미애(오나라)와 그녀의 새로운 관계를 받아들이고, 아들 성경(성유빈)과의 관계 또한 더욱 돈독해진다. 미애와 순모의 관계에 대한 현의 복잡한 감정은 어느 정도 해소되며, 그는 그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는 듯한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현이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던 과거에서 벗어나, 타인의 행복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단계로 나아갔음을 의미한다. 또한, 현과 유진(무진성)의 관계는 단순히 소설을 함께 쓰는 것을 넘어,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주고받는 스승과 제자, 혹은 동료로서의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하며 마무리된다.
유진은 현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고, 현은 유진에게 삶과 글쓰기에 대한 깊이를 알려주었다. 혜진의 짝사랑은 직접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지만, 현은 그녀의 존재와 헌신을 인정하고 고마움을 표현하며, 두 사람의 관계는 여전히 따뜻한 우정으로 남는다. 영화는 현이 완성한 소설의 내용이 실제로 그의 삶과 묘하게 겹쳐지면서, 예술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듯한 여운을 남긴다.
결국, '장르만 로맨스'는 현이 완벽한 로맨스를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가 가진 다양한 형태의 관계와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성장임을 암시하며 마무리된다. 슬럼프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현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달하며, 삶의 불완전함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 결말은 해피엔딩이라는 전형적인 틀에 갇히지 않고, 현실적인 여운과 함께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따뜻하게 담아냈다.
4. 추천 이유
영화 '장르만 로맨스'를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현실적인 공감대와 깊이 있는 캐릭터 묘사에 있었다. 영화는 '로맨스'라는 장르 안에 갇히지 않고, 이혼한 부부, 친구와의 삼각관계, 작가와 뮤즈, 오랜 짝사랑 등 다양한 형태의 인간관계를 복합적으로 엮어내며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의 희로애락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솔하게 그려냈다. 주인공 김현이 겪는 슬럼프는 비단 작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어느 시점에서든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정체성의 혼란과 좌절을 대변하며 깊은 공감을 자아냈다. 류승룡 배우는 한물간 작가의 고뇌와 자존심, 그리고 복잡한 내면을 능청스러우면서도 섬세하게 표현해 관객들을 몰입시켰다.
또한, 이 영화는 단순히 사랑 이야기를 넘어 다양한 관계의 복잡성과 아이러니를 탁월하게 포착했다. 이혼했지만 여전히 가족으로 묶인 전 부부 관계, 우정 때문에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친구와의 묘한 삼각관계, 그리고 순수한 열정으로 다가오는 젊은 작가와의 특별한 유대감 등은 정형화된 사랑의 형태를 벗어나 관계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조은지 감독은 이 모든 복잡한 관계들을 유머와 페이소스를 적절히 섞어 지루할 틈 없이 전개하며, 관객들에게 예측할 수 없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특히, 인물들이 던지는 대사들은 날카로우면서도 위트 넘쳐, 때로는 웃음을 유발하고 때로는 씁쓸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장르만 로맨스'는 삶의 불완전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희망에 대한 메시지를 던졌다. 현은 완벽한 로맨스를 꿈꾸기보다, 삶의 모순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이는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는 부분이다. 각 인물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아파하며 성장하는 모습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다양한 감정들을 대변하고 있다. 로맨스 코미디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안에는 삶의 진정한 의미와 관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웃고 즐기는 것을 넘어, 우리의 삶과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하기에 강력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