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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한 한국 영화 추천, 버닝-이창동 감독

by 오봐정 2025. 4. 23.

제71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

<버닝>

감독 : 이창동

주연 : 유아인, 스티븐 연, 전종서

 

영화 '버닝' 포스터

 

 

 

주요 줄거리

 심리 추리극 작가로 유명한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를 모티브로 시작된 이창동 감독의 2018년 작품 <버닝>은.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한 청춘의 불안, 계층 간의 단절, 존재의 공허함을 미스터리한 서사로 녹여낸다. 이 영화는 명확한 설명이나 결론 대신 의심부재속에서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관객 스스로 찾아야 하는 깊이가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 종수(유아인)는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작가를 꿈꾸는 20대 청년이다. 아버지가 재판 중인 상황 속에 있음에도 그는 무심하다. 감정이 메마른 듯한 등장인물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동네에서 알바를 하던 어린 시절 친구 해미(전종서)를 다시 만나게 되고, 해미는 자신이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나는 동안 자신의 고양이를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종수는 말없이 고양이를 돌보며 그녀의 귀국을 기다린다.

 하지만 해미는 다른 남자와 함께 돌아왔. 바로 벤(스티븐 연)이라는 이름의 미스터리한 청년. 그는 벤츠를 몰고 고급 아파트에 사는 상류층의 전형처럼 보이지만, 직업도, 목적도 모호하다. 벤은 어느 날 종수에게 이상한 고백을 한다. “난 가끔 비닐하우스를 태워. 아무도 모르게.”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종수는 의심에 사로잡히고, 해미가 갑자기 연락 두절되자, 그는 벤이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이 아닌가 확신하기 시작한다.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

 종수는 이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이다. 한없이 무력하고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자신을 알고 있어서인지 해미에게 애정을 품고 있지만 표현하지 못하고, 벤에게 느끼는 열등감과 경계심을 스스로 해소할 방법도 없다. 반면, 벤은 감정의 기복이 없고, 웃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는 무언가 차가운 공허함이 느껴진다. 그는 자신이 특별하다고 여기며, ‘소각이라는 행위를 통해 어떤 쾌감을 느낀다. 이 행위는 실제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것일 수도 있고, 인간관계, 혹은 인간 존재 자체를 소모하고 파괴하는 메타포일 수도 있다.

 복잡한 서사와 뉘앙스를 풍기는 남자 등장인물로 인해 해미는 관객이 가장 공감하게 되는 인물이다. 그녀는 가난하고 외롭지만, 스스로를 살아 있는 존재로 느끼고 싶어 하며, 춤을 추고 여행을 하며, 작은 존재감을 확보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사회는 해미 같은 사람들을 쉽게 잊고, 지워버린다. 결국 영화 속에서 그녀는 사라진다. 명확한 실종이 아니라, 그냥 사라짐으로. 이는 영화의 가장 강력한 주제 중 하나인 보이지 않는 존재의 운명을 드러낸다.

 

 

결론

 영화의 결말은 화면에 보이는 그대로를 생각 없이 받아들인다면 충격적이다. 종수는 해미가 사라졌다는 사실과 벤의 비닐하우스은유를 결합하여 그가 범인일 것이라 확신한다. 그는 치밀하게 벤의 일상을 뒤쫓고, 벤이 다른 여성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마침내, 종수는 벤을 외진 곳으로 유인하여 그를 잔혹하게 살해한 뒤 차량에 불을 지른다. 바로 이 장면에서 버닝은 명확한 폭력의 해소로 끝나지만, 이는 구원의 서사도 아니고, 정의 실현의 결말도 아니다.

 종수의 살인은 단지 분노의 표출일 뿐이다. 그것은 상류층에 대한 복수도, 해미를 위한 정의도 아닌, 그저 지금까지 자신의 내면에 억눌려있던 불타는 감정의 물리적 종결일 뿐이다. 불길 속에서 종수는 무표정하게 벤의 시신을 바라본다. 이것이 영화의 마지막 컷이다. 이 장면은 관객에게 벤이 진짜 범인이었는지, 해미는 정말 죽었는지에 대한 어떤 해답도 주지 않는다. 다만, 존재와 소멸, 욕망과 무력함의 감정만을 길게 여운으로 남긴다.

 

 

추천 이유

 <버닝>은 단순한 실종 미스터리가 아니다. 이창동 감독 특유의 철학적 사유와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 존재론적 탐색이 집약된 작품이다. 영화는 명확한 인과 관계보다 감정과 상징, 불안과 모호함을 중시한다. ‘태운다는 행위는 단지 불을 지르는 것이 아닌, 어떤 존재를 지우고 망각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 사회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이들, 존재했지만 증명할 길이 없는 이들, 그리고 그들을 향한 무관심이야말로 가장 섬뜩한 폭력이라는 메시지가 깔려 있다.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가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준 역할도 크다. 유아인은 내면의 갈등과 혼란을 억눌러 표현하면서도 점점 고조되는 불안을 설득력 있게 끌고 가고, 전종서는 자유롭고 상처받은 청춘의 얼굴을 극적으로 체현해 냈다. 특히 스티븐 연은 다정하면서도 냉혹한,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인물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이 영화의 미스터리를 깊게 만든다.

 무엇보다 <버닝>해석이라는 참여를 관객에게 강하게 요구한다. 명확하지 않은 정보, 부재하는 장면, 불완전한 기억들 속에서 관객은 무엇이 진실인지, 누가 희생자인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이 불편함이야말로 영화가 던지는 질문의 무게이며, <버닝>은 그 질문을 통해 우리 사회의 그림자를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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